-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현대인의 삶의 공조성과 만연한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마지막 부분에서 ‘나’와 ‘안’이 외판원의 죽음을 방치하는 장면에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기주의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고, 여러 형태의 이기적 행동과 상황을 접해보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이기주의적 형태는 사뭇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인 방조에 다름 아니었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나’와 ‘안’은 아직 25살의 젊은 나이지만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다. 예를 들어 중국집에 갈 때도 자신은 가기 싫다며 혼자 가서 먹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불구경을 갈 때도 가기 싫다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말한다. 기분이 내키지 않거나 이득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것은 이미 공동체적 삶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의미한 대화를 하면서 퍽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말장난일 뿐 현실적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평화시장 앞에서 줄지어 선 가로등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는 질문한 사람만이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인 물음이다. 또 그것이 켜져 있든 꺼져 있든 현실적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점에서 가치 지향적인 물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척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이들의 무의미한 대화를 보여줌으로써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 현실과 미래에 대한 가치 지향적인 이슈가 상실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외판원의 죽음은 개인주의가 빚은 이 사회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외판원은 아내가 죽었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자신이 이 세상에 살 가치가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민을 ‘나’ 와 ‘안’에게 모두 털어놓으며 얼마쯤이라도 고통을 나눠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나와 안은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대충 넘긴다. ‘나’와 ‘안’은 철저한 개인주의자이고, 그런 까닭에 고통을 공유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판원은 화재 현장에 가서 돈을 불에 던져버린다. 이 행위는 극도로 개인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한 외판원은 극도의 절망감에 휩싸여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외판원은 자살하기 전 날, 여관에 들면서 자기와 함께 같은 방에서 밤을 지새우자고 부탁한다. 하지만 ‘나’와 ‘안’은 피곤하다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 날 밤 외판원의 부탁만 들어주었어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판원은 개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피해자인 셈이다.
요즘 현대 도시인들의 삶 역시 다분히 자기중심적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64년과는 무려 40년이 넘게 차이가 나지만 사람들의 가치관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자신만 알고 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지 안 주는지 제대로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비극적인 상황까지 전개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것이 이기적 사고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사회 구성원들간에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며, 오직 나의 이익만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점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폭력과 강도, 심지어는 살인까지 난무하는 극악한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나와 안은 외판원의 죽음을 방관한다. 그것은 직접 살인은 하지 않았더라도 살인 방조죄를 범했다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은 그 사실조차 무덤덤하게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요즘 우리네 실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 한 달 넘도록 방치되어 있는 데도 이웃들은 알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사건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치부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치부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치유법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다만 그 방법들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개인주의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선유고 2 N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