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논술이 통합 논술의 성격을 띠면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바뀌고 있다. 단순한 배경 지식의 습득이나 학원식 모범 답안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상투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틀에 박힌 논술과도 작별해야 한다. 남과 차별되는 신선한 논술이야말로 중요한 성공 포인트다. 중앙일보 프리미엄에서는 앞으로 5회에 걸쳐 학생들이 자기만의 답안을 만드는 방법과 그 과정을 소개한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논술학원에서는 보통 잘 짜인 커리큘럼과 함께 두꺼운 자료집을 제공한다. 그 속에는 정치.경제.사회.철학.과학을 망라한 온갖 종류의 고전들이 백과사전처럼 들어있다. 학생들은 스타 교사가 설명하는 친절한 해설을 듣고, 배경 지식을 익히며, 깨끗하게 정리된 키워드들을 암기한다. 수업시간에 한번 훑어본 고전이 제시문에 나온 걸 가지고, 학원은 마치 문제 자체를 찍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논술수업은 학원의 명성을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의 진짜 실력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단순히 배경 지식만 많다고 논술을 잘 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학원이 제공하는 모범 답안은 틀에 박힌 논술문을 쓸 수 있는 평균적인 능력을 길러줄 뿐이다. 학생들의 답안지에서 “학원에서 훈련받은 냄새가 풀풀 난다”는 대학 채점자들의 푸념은 바로 그래서 생겨났다.
앵무새는 비록 ‘안녕’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뜻을 알지 못한다. 상투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틀에 박힌 수업은 결국 알맹이 없이 공허한 답안만 대량 복제할 뿐이다.
그렇다면 논술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배경 지식을 잘 암기하는 게 아니다. 주어진 내용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사고하고,자신의 생각을 한데 모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에서 단편적인 지식 그 자체만을 익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선별해 내고 그것들을 구성하는 일정한 ‘관계의 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의미를 생성하는 다양한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좋은 논술이 요구하는 핵심이다. 따라서 그런 방식으로 나오는 답은 결코 하나 뿐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좋은 논술은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창의력 넘치는 글’이다. 또 그와 같은 자기만의 논술 답안은 논술하는 태도, 논술하는 사유 방식이 일상화될 때 비로소 작성이 가능해진다. 논술의 일상화란 다른 게 아니다. 배웠던 내용을 현실의 다른 문제와 관련시켜 보는 것, 사건의 피상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이면에 놓인 본질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서 배운 신자유주의와 롤스의 정의론을 단순히 공부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현재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생각, 개성적인 목소리를 되레 평균 수준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규격화된 논술은 오히려 독이다. 남들이 모두 ‘예’라고 할 때, 그것이 아닌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논술이어야 신선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논술은 기본적으로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논리 없이는 감동도 없다. 논리 없는 답안은 공허한 궤변이고, 너절한 자기만족일 뿐이다. 무릇 논술이란 “생각을 세우는 일(思起)이고, 생각을 담는 그릇(思器)이며, 생각을 풀어내는 기술(思技)인 것이다. 결국 논술은 사기다. <공성수>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