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읽고
이 소설은 주로 가난을 소재로 많이 다룬 현진건의 작품이며 1921년에 발표 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남편은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결혼 후에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 온 뒤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이다. 그는 당대의 엘리트였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아내에게도 자기 처지를 이해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또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가 없다. 즉 남편은 자신의 상황은 인식했지만 그것을 능동적으로 개선해나가지 못하는 쓸모없는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의 남편과 같은 인물은 현대사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학을 나왔지만 직업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 뉴스의 톱을 장식하던 몇몇 교수의 논문 위조 사건에서 보듯이 직업을 가졌지만 대중들을 속여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작년에는 학력을 위조한 여교수까지 등장하여 모든 지식인의 명예로움에 흠집을 내기도 했다. 이 소설의 남편 역시 대학을 졸업한 당대의 엘리트였지만 직업을 얻지 못한다. 그는 당시의 모순과 부패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매일 술에만 절어 살면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요즘의 학생들도 이런 남편과 비슷한 경우가 더러 있다. 자신이 잘하는 특기가 있거나 공부 외에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설정하고 싶은데 부모나 선생에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만약 공부 말고 다른 분야에 정말 뛰어나다면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워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도 더 우월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또한 소설 속의 남편을 보면서 현대의 고학력 선호 주의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요즘과 같은 경쟁사회 속에서 높은 학력을 선호하는 일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아까운 인재들을 놓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분야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과 일류 대학을 나왔지만 실력은 그저 그런 사람이 취직을 하려 할 때 대부분의 고용자들은 후자의 사람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 때문에 논문이나 학력을 위조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지식인이란 사회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어야 쓸모 있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도 무능하고 현실 감각이 뒤떨어진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소설 속의 아내는 결혼한 후 7~8년 동안 남편이 동경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늘 외롭게 지냈다. 그녀는 그 긴 세월 동안 남편이 꼭 부자로 만들어주는 ‘부자 방망이’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남편이 책을 읽고, 술을 마시고 집에 있는 돈을 가져다가 써도 모두 ‘부자 방망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당시의 무지한 서민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아내의 무지함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한술 더 뜬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을 보고 아내는 누가 자꾸 술을 권하느냐고 묻게 되고, 남편은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아내는 사회를 요릿집 이름으로 인식하여 앞으로는 가지 말라고 말한다. 아내의 무지함에 답답함을 느낀 남편은 마침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다시 뛰쳐나간다. 현명한 아내였다면 남편의 진정한 고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어야 옳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그릇이 못 되었고, 그것이 그녀의 한계성이었다.
요즘 사회에서는 아무리 서민층이라고 해도 의무 교육을 받기 때문에 아내와 같이 무지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이 이 사회를 이만큼 성장의 궤도 위에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그러나 아직도 소설 속의 남편처럼 신세를 한탄하며 아깝게 버려지는 지식인들이 늘고 있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 등이 그 한 예이다. 아무리 지식인이 많아도 그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허균의 ‘유재론’이라는 글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사회가 당대의 지식인들을 잘 활용하고 지식인 또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면 그 사회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선유고 2-7 LJY)